런던의 한국인 헤드헌터 탄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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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ove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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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한국인 헤드헌터 탄생기


 


 


전성민 [영국 / Perfect Employment]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평범한 젊은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진로의 폭이 너무나 좁은 것 같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주위를 둘러보니 대부분 비슷비슷하게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토익 점수를 높이고 인턴 경력을 쌓아 대기업에 도전하거나, 아니면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거나.


그러나 모두가 다 대기업에 입사할 수 없고, 모두가 다 공무원이 될 수는 없는 만큼,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그 좁은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무한 경쟁에 내몰리는 것이 그리 바람직해 보이진 않았다. 그러한 경쟁 말고도 도전해볼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할 것 같았다. 나는 그 도전의 기회를 해외에서 찾아보고 싶었다. 해외에 나가면 분명 내가 도전할 수 있는 새로운 분야가 있을 것 같았고, 특히 해외에서 한국의 위상이 과거에 비해 월등히 높아진 만큼, 내가 한국인이라는 점 하나 만으로도 도전해볼 수 있는 영역이 존재할 것 같았다.


 


 


영국, 아직은 한국인들에게 미개척지


나는 군 제대 후 복학 전 미국으로 짧은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난생 처음 발견한 새로운 세상은 그 때까지만 해도 몰랐던 뜨거운 열정을 새롭게 발견하게 계기가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세계를 무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열망을 간직하기 시작했다. 고작 9개월 동안의 경험으로 품은 다소 허황된 꿈이었지만, 나는 훗날 때가 되면 반드시 그 꿈을 향해 도전하리라 다짐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에 복학한 뒤 학과 공부를 하면서도 해외에 나갈 구체적인 계획을 조금씩 세워갔다. 전공이 영어영문학이었고 아르바이트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했으니, 영어는 좋든 싫든 꾸준히 연마할 수밖에 없었다. 관건은 과연 어떤 계획으로 어느 나라를 택하느냐였다.


해외 경험이라고 해봐야 미국 어학연수 9개월이 고작인 내가 무작정 해외취업에 도전하기에는 무리였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석사 유학이었다. 공부를 하면서 현지에서 직접 부딪히며 도전해보자는 계획이었는데, 그러자니 비싼 유학비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미국은 석사 과정이 보통 2~3년이라 학비 부담이 크고, 이미 교민과 유학생이 너무 많아서 나 같은 평범한 사람에게까지 기회가 올 것 같지 않았다. 그 외의 영어권 국가들을 하나씩 알아보던 중, 영국의 경우 석사 과정이 1년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정도의 유학비는 어느 정도 노력하면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영국은 유학 중에도 (학생비자 신분으로) 파트타임 일을 허용하기 때문에 현지에서 생활비를 벌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국은 아직 한국인들에게 미개척지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영국 내 한인 규모는 다른 나라에 비해 턱없이 적은 3~4만 명에 불과했고, 영국에서 유학을 했거나 혹은 영국 취업, 영국 이민에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 만큼 영국에는 아직 한국인이 개척하지 않은 분야가 있을 것 같았고, 어떤 기회라도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 다른 나라에 비해 조금이라도 높을 것 같았다.


 


유학, 학교 공부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렇게 영국 석사 유학을 결심하고 나서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부지런히 일했다. 대학 졸업 후 약 6개월이 지나자 어느 정도 준비가 돼 영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석사 유학으로 내가 택한 전공은 원래부터 관심이 많았던 언론학(Journalism)이었다. 세 학기 중 첫 학기를 마칠 즈음, 문득 이렇게 공부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사를 마친 뒤 영국에서 취업에 도전하더라도 단순히 학위만 가지고는 힘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같은 과 학생들 중 동양인은 나 혼자였다. 나머지는 유럽, 호주, 뉴질랜드 출신이었는데, 이들은 영어 실력은 물론이고 영국 및 유럽에 대한 시사‧문화 지식이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부했다. 나중에 그들과 경쟁하려면 학업 중 어떤 식으로든 부족한 부분을 보강하고 실무 경력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영국 내 언론사, 미디어 회사에 이력서를 보내고 파트타임 일자리를 구해보려 시도했다. 그러나 영어가 모국어도 아니고 그렇다고 관련 분야 실무 경력도 없는 나에게 선뜻 일자리를 주려는 곳은 없었다.


그러다가 떠올린 게 영국 내 한인 언론사였다. 당장 영어로 일할 실력이 안 되니, 일단 한국어로라도 언론사 실무 경력을 쌓자는 생각이었다. 나는 영국에 본사를 두고 다른 16개 유럽 국가로도 발행하는 주간지 교민신문 <유로저널>에서 파트타임 기자로 일하게 되었다. 영국 현지 언론보도를 한국어로 번역각색해 작성하는 번역기사, 다양한 행사나 소식을 보도하는 취재기사, 그리고 한국인이나 한국과 관련된 외국인을 만나서 작성하는 인터뷰 기사 등 매주 많은 분량의 콘텐츠를 만들었다. 그러는 동안 어쩔 수 없이 학교 공부에 할애하는 시간과 에너지가 상대적으로 줄어 좋은 성적을 얻지는 못했지만, 성적보다 중요한 실무 경험을 차곡차곡 쌓으면서 내 이력서에 써넣을 내용도, 면접관에게 들려줄 이야기도 점점 늘어갔다.


 


도전은 그 자체만으로 소중한 경험


마지막 학기 때부터 본격적으로 취업에 도전했다. 실제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면서 나는 비로소 왜 그렇게 영국 취업에 성공한 한국인들이 많지 않았는가를 알게 되었다. 바로 취업비자 때문이었다.


영국 및 EU 회원국 간에는 자유롭게 취업 및 이민이 가능했는데, 특히 영국은 취업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찾아오는 국가였다. 영국 정부 차원에서는 당연히 이민자를 억제하는 정책을 펼 수밖에 없었고, 그렇기에 나 같은 한국인을 포함한 비 EU 출신들은 취업비자를 받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그런 까닭에 영국 내 회사들은 대부분 영국인이나 EU 출신 유럽인을 채용하는 분위기였다. 나에게 너무나 유익한 경험을 선사해준 <유로저널> 역시 취업비자를 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나는 학생비자 유효기간이 남아있는 몇 달 사이에 취업비자를 내줄 수 있는 회사에 합격해야만 했다.


당시에 나는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곳에 이력서를 보냈다. 만약 취업에 성공하지 못하면 영국 비자가 만료되는 대로 가차 없이 영국을 떠나야 했기에 그 절박함이란 어마어마했다. 그렇게 많은 곳에 이력서를 보냈지만 대부분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그나마 어쩌다 면접을 봐도 비자 얘기가 나오면 다음 단계로 진행되지 않았다. 그 때마다 깊은 좌절감에 빠졌다. 내가 영국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게 억울하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계속 좌절하고 억울해하는 것은 별로 현명한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생각을 달리했다. 내가 목표로 하는 취업이 이루어지면 당연히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이렇게 영국에서 취업에 도전하는 자체만으로도 훗날 소중한 경험으로 남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기로 한 것이다. 간혹 비자 문제로 탈락하더라도, 면접관이 나를 어떻게 평가했는지 꼼꼼히 검토해보며 최대한 유익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다 보니 면접 시 자연스럽게 긍정적인 에너지로 대화할 수 있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자신감도 생겼다. 그 자신감은 내가 어디가 잘났다는 것이 아닌, 내가 하는 도전 그 자체에 대해 당당한 자신감이었고, 나는 마침내 그 자신감을 제대로 표출할 기회를 만나게 되었다.


 


자리가 없다면 스스로 만들어라


어느 행사장에 갔다가 파소나(PASONA Europe)라는 한 외국회사의 홍보부스를 우연히 들르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나에겐 생소했던 채용 대행업체(Recruitment)였다. 직업을 연결해주는 곳이니 관심 있으면 이메일 주소를 적어달라고 해서 남겼는데, 며칠 뒤 이력서를 보내달라며 연락이 왔다. 적극적으로 구직 중이었던 나는 당연히 이력서를 보냈고, 파소나는 며칠 뒤 괜찮다면 직접 자기네 회사를 방문해 인터뷰를 갖자고 했다.


이 인터뷰는 어떤 일자리를 놓고 나를 채용하기 위한 면접이 아니라, 등록한 구직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는 인터뷰였다. 나는 그렇게 파소나의 컨설턴트(헤드헌터)들과 인터뷰를 가지면서 이들이 한국 기업, 한국인 구직자를 대상으로 하는 부서를 막 신설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부서를 운영하려면 반드시 한국인이 필요해 보였다. 당시 파소나는 일본인, 영국인, 뉴질랜드인 등 다양한 국적의 직원들이 있었지만 한국인은 한 명도 없었고, 이들은 한국 기업이나 한국인에 대해 거의 아는 바도 없었다.


무슨 용기에서였는지 나는 그 얘기를 듣자마자 대뜸 “당신들이 이 비즈니스를 하려면 한국인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를 한번 써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 헤드헌터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나의 제안에 다소 당황한 듯하더니, “그럼 너는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는 얘기냐?”면서 일단 회사 경영진과 상의해보겠다고 했다. 그들은 이 비즈니스를 야심차게 기획하면서도 정작 한국인 직원을 채용할 생각은 못했는데, 막상 이야기를 듣고 보니 한국인 직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듯했다.


집으로 돌아와 파소나라는 회사와 채용 대행이라는 비즈니스에 대해 여러 가지로 알아봤다. 그리고 혹시 모를 파소나 경영진과의 면접에 대비해 어설프게나마 비즈니스 계획서 같은 것도 만들어보았다. 파소나는 미국에만 7개 법인이 들어가 있을 만큼 거대한 글로벌 조직이었고, 유럽법인은 런던에서 20년이 넘게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다.


약 열흘 뒤 정말로 파소나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회사 대표와 면접을 보는 자리에서 나는 그동안 조사하고 나름대로 세운 계획들을 말하면서, 이 비즈니스의 가능성, 진행 방향 등에 대해 내가 가진 생각들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면접을 마친 뒤 회사 대표는 그 자리에서 내게 일자리를 제안했다. 우선 학생비자가 남아있는 3개월 동안 파트타임 계약직으로 근무한 뒤 그에 대한 성과에 따라 정규직 전환과 영국 취업비자를 지원해주는 조건이었다.


까마득하게만 보였던 영국 취업, 드디어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붙잡았다는 사실에 얼마나 흥분되었는지 모른다. 물론, 3개월 뒤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그렇게나마 도전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당시 이미 파소나에서는 한국인 구직자들을 여러 명 등록시키고 인터뷰도 하던 중이었다. 다만 나처럼 구직자 쪽에서 먼저 일을 해보겠다며 적극적으로 다가선 사례는 없었다고 한다. 결국, 회사로서는 전혀 계획에 없었던 일자리가 나 때문에 만들어진 셈이었다.


드디어 이루어진 꿈


2007년 8월, 3개월 계약직으로 첫 출근을 시작했다. 내 직책은 ‘Marketing & Communications Officer’로서 신규 사업 개발과 고객사 발굴, 한국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 홍보였다. 회사 대표는 미디어를 통한 마케팅, 홍보를 특히 좋아했다. 나는 언론 홍보 자료와 회사 대표 인터뷰 작성 등 <유로저널>에서 쌓은 경험들을 너무나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파소나가 나를 채용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내가 단순히 석사 학위만 갖고 있었다면 아마 나를 채용하지 않았을 테고, 나 역시 막상 기회가 주어져도 아무 일도 할 줄 몰랐을 것이다. 내가 헤드헌터로서 유학생 구직자들에게 꼭 하는 조언이 바로 이것이다. 학위만 믿지 말고 반드시 학업 중 전공과 관련된 실무 경력을 쌓으라는 것이다.


어쨌든, 3개월의 계약 기간 동안 파소나가 나에게 부여한 가장 중요한 과제는 한 건의 성공적인 헤드헌팅 성사였다. 신규 사업부인 만큼 마케팅, 홍보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고객사(기업)에 구직자를 채용시키는 본연의 비즈니스가 이루어져야 했다. 또 이를 통해 헤드헌터로서의 나의 자질과 가능성도 평가하려는 듯했다. 이 분야에 대해서 생초보인 나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최선을 다했고, 결국 그 한 건의 헤드헌팅을 성공적으로 성사시켰다.


그저 내가 가진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한 것뿐인데, 어찌 보면 나를 도운 것은 나의 조국 한국이었다. 당시 영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여럿 있었고, 그들의 비즈니스는 무척 성공적이었다. 이 때문에 파소나는 한국 관련 사업부를 신설할 생각을 하게 된 것이고, 나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취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약속대로 파소나는 나에게 정규직 전환과 함께 영국 취업비자를 제공했다. 취업비자로 5년을 더 체류한 뒤 영국 이민법에 따라 영주권도 얻게 되었다. 어느덧 나는 6년 차 헤드헌터가 되어 이제 수석 헤드헌터(Head of Recruitment)라는 리더 직함도 갖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우리 회사는 사업 규모가 더욱 확장돼 2009년도에 파소나로부터 독립해 Perfect Employment라는 새로운 회사명으로 영국은 물론 전 유럽을 대상으로 더욱 활발한 비즈니스를 펼치고 있다. 세계를 무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안고 영국에 첫 발을 내디딘 나는 이제 지난날의 나처럼 그렇게 부푼 꿈을 안고 영국을 찾는 한국인 유학생들에게 조언도 하고 취업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한국인의 영국 개척사를 기대하며


과거에 비해 영국 취업이나 영국 이민에 성공한 한국인들이 증가했지만, 여전히 영국은 한국인에게 미개척지다. 영국에는 아직 한국인들이 진출하지 않은 분야가 너무나 많은 반면, 한국의 위상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으니 한국과 관련해서 만들어질 수 있는 비즈니스나 일자리도 무궁무진하다. 우리 회사가 런던에 있으면서도 전 유럽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하는 것처럼, 영국은 유럽으로 향하는 교두보와 같다. 영국을 발판으로 드넓은 유럽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 내 유명한 외국 기업에 취업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 영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서 일해 보는 것도 유익한 경험이 될 것이다. 아니면 외국 기업에서 한국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도 좋다. 기존 일자리에 지원하는 것도 좋지만, 지난날 내가 그랬던 것처럼 한국인이 필요한 일자리를 직접 만들어볼 수도 있다.


영국인들의 손에는 한국산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고, 영국의 도로에서 한국산 자동차를 보는 일은 너무 흔하다. K-Pop과 한국 영화 역시 영국에서 인기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과 유럽 간 FTA 또한 한국인들이 도전해볼 수 있는 다양한 비즈니스와 일자리를 창출할 가능성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 여전히 영국 이민법은 엄격하고 취업비자를 받기가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조차 누군가는 비자를 받으면서 취업에 성공하고 있다. 마침 지난해부터 한국과 영국 간 워킹홀리데이(Youth Mobility Scheme) 협정이 체결돼 한국의 젊은이들이 2년간 영국에서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


그렇다고 아무런 준비나 노력 없이 무작정 영국에 온다면 별 성과 없이 영국을 떠나게 될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한국에서부터 일정 수준 이상의 영어 실력을 갖추고 와야 하고, 자신이 도전하고자 하는 분야와 계획이 체계적이고 확고해야 한다. 한국에서보다 더 많은 땀과 노력을 기울일 각오를 해야 한다. 가족이나 지인들의 시선이 사라지는 만큼, 자칫 무절제하거나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낼 위험성도 높기에 해외에서는 자신에게 더욱 엄격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더욱 독립적이고 성숙해질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수 있다. 바라건대 한국인들, 특히 한국의 젊은이들이 영국에 와서 다양한 분야에 도전했으면 좋겠다. 무의미한 스펙 경쟁에만 몰두하기에는 한국 젊은이들이 지닌 능력과 열정이 아깝고, 세계 무대에서 드높아진 한국의 위상과 국가 브랜드가 아깝다. 나날이 높아져가는 한국의 위상을 등에 업고, 한국인이라는 점을 발판으로 삼아 영국에서, 나아가 유럽에서 개척할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한국인들의 새로운 영국 개척사를 기대해본다.


 


 


 


 


 


Profile


전성민은 대학 졸업 후 영국으로 석사과정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취업에 성공했다. 취업비자를 얻기 힘든 곳으로 잘 알려진 영국에서 부단한 노력으로 틈새시장을 찾아 자신의 영역을 개척해나간 사례다. 그는 현재 영국 런던에 있는 다국적 서치펌 Perfect Employment의 유일한 한국인이며, 선임 헤드헌터로서 전체 Recruitment 사업부의 팀장으로 근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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