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 DO IT
- 작성자
- K-Move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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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려상 / 해외취업
JUST DO IT
강병훈 [중국 / 음식점 운영]
처음 중국 땅을 밟은 건 2008년 6월이었다. 한국은 아직 본격적인 여름이 채 오지 않았지만 상해는 이미 폭염이 한창이었다. 5년이 지났건만 아직까지 푸동 공항 게이트를 나서는 순간 덮쳤던 숨 막힐 듯 뜨겁고 습한 공기를 잊을 수 없다. 사실 그 당시만 해도 중국어를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단순히 중국을 한번쯤 방문해봐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놀러 온 것이다. 동방명주, 와이탄 등 상해 명물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다녔다. 4박5일 동안 실컷 놀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날, 와이탄의 야경을 보기 위해 한 번 더 들렸다. 불행히도 비가 오고 날씨가 흐렸다. 홍콩 야경보다 10배는 더 멋있다고 가이드가 입이 마르도록 자랑한 풍경은 결국 보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하고 기념촬영을 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주룩주룩 비가 내리는 창밖을 바라봤다. 문뜩 내가 앞으로 이곳에 자주 올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현지 문화를 경험하고 친구를 만들다
그 다음 중국 땅을 밟은 건 2009년 8월이었다. 위해에 있는 산동대학교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위해는 산동성에서도 깨끗하기로 소문난 도시였다. 과연 다른 도시보다 훨씬 잘 정돈된 도로와 건물이 인상적이었다. 당시 나는 기숙사에 살았는데 기숙사 후문으로 나가면 바로 국제해수욕장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해수욕장과 같은 놀이문화를 기대했지만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한 여름인데도 인적이 드물었고 그나만 몇몇 보이는 사람들도 수영복이라든가 물놀이를 위한 옷차림보다는 평상복으로 여가를 즐기곤 했다.
산동성은 기본적으로 한국인이 많은 지역이었다. 심지어 위해 시내 모든 간판은 중국어와 한국어로 되어 있었다. 엉뚱하게 번역해서 웃음을 자아내는 간판들도 눈에 띄었지만 그만큼 한국인이 많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중국 대학생들은 굉장히 순진했다. 외국학생을 처음 보는 신입생들은 우리가 학생식당에서 밥 먹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가기도 했다. 처음엔 한국 여대생들과 딴판인 그들의 잘 감지 않은 머리와 음식냄새가 낯설었지만 나중에는 그들과 비슷한 몰골로 다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선생님들은 모두 가르침에 열정이 있었고 선생과 제자 간에는 한국보다 엄격한 예의를 갖춰야 했다. 선생님은 학생들이 수업 전에 칠판 지우는 것을 당연시해 우리에게 몇 번 지적하곤 했다. 그런가 하면 중국 전통 노래를 들려주겠다며 진심을 담아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학생이라 모든 게 즐거웠고 지금도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다. 특히 후배 집에 모여 칭다오 맥주와 양꼬치를 배달시켜 먹었던 것이 그립다. 서해로부터 불어오는 강풍을 뚫고 후배집에 하루가 멀다 하고 놀러 갔던 기억이 난다.
2011년 5월, 비행기는 나를 홀로 남경에 내려놓고 떠났다. 이번에는 신분이 달랐다. 어엿한 한국 대기업 L사의 일원으로서 출장을 온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이제 갓 5개월 차인 신입이 중국으로 혼자 출장 온 것이라 긴장되기는 했다. 호텔에 짐을 풀고 다음날부터 남경 공장으로 출근했다. 이때 난 중국 직원들이 한국 본사 직원들과 근무 태도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5시 정시 퇴근, 무슨 부탁을 해도 불친절한 태도, 업무시간에 시도 때도 없이 하는 인터넷 쇼핑. 내가 뒤로 스윽 하고 지나가면 한참 뒤에야 인기척을 느끼고 창을 가렸다. 업무시간에 딴 짓 하다 들키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그리 크지 않는 것 같았다. 대체적으로 책임감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칫 불필요할 수도 있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이러한 경험이 내겐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을 오가면서 많은 중국인 친구들을 알게 되었고 그들 문화에 익숙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음식점 창업과 같은 경우에는 음식의 현지화가 생명이다. 다양한 중국문화를 습득하고 현지 친구들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큰 자산이 될 수 있다.
주위 환경과 본인의 경험을 적극 활용하라
2013년 5월, 나는 다시 상해에 있었다. 다시 찾은 상해에서 나는 조금 황당한 일을 겪었다. 한국에서도 좋은 회사를 그만두고 온 목적은 중국에서 창업하는 것이었다. 사실 대기업이라도 직장에 다시 들어가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직장에 다니며 천천히 창업을 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상해에 있는 친구의 집에 머물면서 인터넷 커뮤니티를 활용해 한국무역협회가 주관하는 채용박람회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에서 한국 대기업에서 면접 볼 기회가 생겼다. H사는 자신들이 정유회사기 때문에 금전적인 대우가 좋다며 나를 유혹했다. 운이 좋아 1차 면접을 통과했고 2차 면접에 참여했다. 일주일 뒤 전화가 와 나에게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고 전했다. 좋은 소식은 최종합격했다는 것이고 나쁜 소식은 한국인 자리로는 채용이 불가하니 중국인 대우를 받으면서 다녀야 한다는 것이었다. 월 임금 70만원, 중국은 임금상승률이 높으니 10년만 다니면 자신만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그 과장의 설명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자신들은 주재원 자격으로 몇 억씩 받으면서 같은 업무 강도에 자신들의 수십 분의 일 월급을 받으라는 말을 어쩜 그렇게 뻔뻔하게 할 수 있을까. 애초에 한국인 대우가 불가능했으면 공지로 알렸어야 하는 것 아닌가. 현지 채용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회의를 체감할 수 있었다.
난 그 뒤로 창업 아이템 발굴에 더욱 힘을 쏟았다. 먼저 한국인임을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류의 근원지기도 한 이곳에서 한류 덕 좀 보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 드라마에 자주 나와 중국인들이 호기심을 갖고 있고 개인적으로도 가장 쉽게 시작할 수 있는 떡볶이 전문점을 생각해냈다. 상해와 북경 등 대도시에는 이미 떡볶이 가게가 다수 존재하기 때문에 내륙 도시이자 물류 중심지인 호북성 우한시에 문을 열었다. 음식은 최대한 현지화를 위해 노력했다. 한국의 매운 고추장보다는 중국에서 나오는 묽은 고추장을 사용했다. 또 훠궈라는 중국 대표 음식에 착안해 기호에 맞는 음식들을 첨가해 먹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직원들 교육도 직접 도맡아 한국식 서비스 마인드를 심는 등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다른 가게들과 차별화를 느낄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의심이 많은 중국인들을 위해 조리하는 장면을 투명 인테리어로 공개했다. 위생에 신경을 많이 쓰니 고객들도 하나둘 알아주기 시작했다.
지금은 월 매출이 3,000만 원에 달한다. 아직 많다고 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창업 초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순항 중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떡볶이 가맹점을 늘리고 돌솥비빔밥이나 불고기와 같은 다른 요식업 체인점도 계획 중이다. 특히 서부 내륙 도시 쪽으로 적극적인 사업 활로를 찾을 예정이다. 중국에서 한국인으로서 취업이나 창업을 하려는 우리 젊은이들이 내 글을 보고 힘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JUST DO IT!
Profile
강병훈은 장래에 중국을 무대로 활동하고 싶어 중국어를 전공한 뒤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중국에서 공부하며 문화를 익히고 친구를 사귄 것이 나중에 큰 자산이 되었다고 한다. 중국에서 취업하고자 하면 한국에서 2년 이상 경력을 쌓고 오는 것이 좋으며, 중소기업은 인재관리가 유연해 대우 측면에서 대기업보다 오히려 좋은 경우도 많다고 한다. 현재 떡볶이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향후에는 분야를 패션잡화, IT 방면으로 확장할 계획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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