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 청년 ‘튀니지‘에서 주방의 철학자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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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작 / 해외봉사
청년 ‘튀니지‘에서 주방의 철학자를 꿈꾸다
김광민 [튀니지 | KOICA 요리봉사단원]
나의 어릴 적 꿈은 하얀 앞치마를 허리에 두르고, 하얀 모자를 쓰고 전쟁터 같은 주방을 지휘 하는 요리사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대한민국 외식업에서 요리사들을 이끄는 ‘한국관광공사CEO’가 되어 대한민국 요리사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의 요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주고 싶다. 주방을 지휘하는 요리사를 꿈꾸던 소년이 한국의 외식업에서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것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아프리카 튀니지에서의 경험 덕분이다.
소년 요리사를 꿈꾸다
초등학교 시절 MBC에서 방영했던 <성공시대>라는 프로그램에서 하얀 앞치마를 두르고, 하얀 모자를 쓰고 주방을 지휘하는 요리사를 보며 나도 어른이 되면 저런 요리사가 되어야겠다는 꿈을 꾸었다. 나는 한국조리과학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멀게만 느껴졌던 그리고 상상만 해 왔던 꿈에 현실로 한 걸음 다가갔다. 그곳에서 나는 ‘요리는 과학이며 예술이다.’라는 요리 철학을 배우게 됐고, 주방에서 수도 없이 혼나며 칼과 불에 대한 기본기를 익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요리사로서의 인성과 자부심이었다. 그 당시는 요리를 잘한다는 것이 대회에 참가하여 입상을 많이 하고, 접시 위에 조금 더 멋진 장식을 올려놓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리를 하면 할수록 진정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좋은 식재료를 찾는 눈을 가지고서 최소한의 조리 방법으로 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이 생각하지 못한 창의적인 조리 방법으로 맛을 낼 줄 아는 사람이라는 나만의 가치관을 갖게 되었다.
같은 전공으로 입학하게 된 대학에서는 책을 통해 학습하는 간접경험보다는 몸으로 직접 부딪치며 학습하려고 노력하였다. 고등학교 시절 요리사가 되겠다는 같은 목표로 만났던 친구들 외에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대학의 학보사에 들어가 기사를 쓰며 소통하는 방법을 배웠고, 자원을 통해 다녀온 해병대에서는 최고 수장인 사령관의 조리병으로 일하며 수장의 책임감과 자기 관리를 지켜보았다. 선배를 통해 방학 동안 다녀온 일본에서는 여행자가 아닌 노동자로 주방에서 일하며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을 없앨 수 있었다.
KOICA에 지원하게 된 결정적인 시기는 필리핀으로 한 달간 대학생 단기 봉사단 활동을 다녀오고 나서이다. 그곳에서 나는 음식이라는 문화를 가지고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게끔 하는 체험을 했다.
나를 위한 더 큰 배움, 가르침
“지금의 탐험가는 자연을 상대하지 않는다. 자신의 분야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이 탐험이며 탐험가다.” 산악인 故박영석 대장이 했던 말이다. 요리라는 나만의 분야에서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 도전하였던 2년 3개월 동안의 튀니지 KOICA 봉사 활동은 많은 창의력과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나에게는 무척이나 좋은 기회였다.
튀니지는 이집트와 더불어 관광산업이 국가 경제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그에 따라 튀니지 정부는 관광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세계적으로 아시아 음식이 몸에 좋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튀니지에서도 점차 아시아 음식 조리사 양성 교육을 필요로 하게 되었지만, 문제는 교수들조차 아시아 음식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빵을 주식으로 해 왔기 때문에 밥을 담을 만한 그릇이나 젓가락조차 구하기 쉽지 않았다. 이런 현지 사정 때문에 튀니지의 관광산업과 대한민국의 문화 전파를 위해 내가 파견될 수 있었다. 내가 근무를 했던 곳은 튀니지 관광청 산하 국가기관인 국립관광교육센터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관광전문대학 같은 기관으로, 내가 맡은 일은 학생들에게 한국의 음식을 중심으로 일본 음식과 중국 음식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알려 주고 실습을 도와주는 곳이었다.
내가 강의하는 수업에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학생도 있었다. 수업이 시작되고 한 번도 접해 본 적 없는 간장과 참기름을 먹어 보게 하고 겨자를 맛보게 하니 다들 그 맛에 깜짝 놀랐다. 이슬람 사람들은 간장이 들어간 음식을 접해 보지 않아 처음에는 거부감을 보였다. 또한 음식에 설탕을 넣지 않는 튀니지에서 불고기나 잡채 같은 음식에 설탕을 넣으면 신기해하며 강의에 임했다. 나는 강의 때마다 “너희는 음식을 하는 사람이고, 외국에 나가서 일을 하는 것이 꿈이면, 거부감을 가지지 말고 호기심을 가지고 먹어 봐라.”하고 얘기했다. 이런 말을 하는 내가 쑥스럽기도 하고, 학생들을 보고 있으면 나를 가르쳤던 은사님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셨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빙그레 웃음이 나기도 했다.
학생들에겐 취업을 했을 때 아시아 식재료가 낯설지 않게끔 실습 위주의 교육을 해주었고, 선생님들에게는 튀니지에서 비행기 시간으로 하루가 걸리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알려 주었다.
필리핀 단기 봉사 활동의 좋았던 기억만 가지고 출발했던 튀니지에서의 장기 봉사활동은 생활 부분에 어려움이 많았다. 현지 음식을 먹고 장염에 걸려 혼자 서러움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낙후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교통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긴장하는 마음에 한 손에는 생명줄인 양 핸드폰을 꼭 쥐고 다녔다. 하지만 넉넉하지 않지만 무척 여유롭게 살아가는 현지인과 동양에서 온 어린 이방인을 따뜻하게 대해주는 기관 선생님들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2년 3개월이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겁먹지 말고, 우선 부딪쳐 보자, 부딪쳐 보고 아니다 싶으면 돌아와도 늦지 않아. 광민아!” 처음 이곳에 혼자 남겨졌을 때 항상 외쳤던 말이다.
젊음은 결코 늦지 않다
지난 5월 28일 튀니지에서 가까운 맛의 나라 프랑스와 스페인을 여행하고 귀국한 나는 현재 청담동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고 있다. 고민을 정리하기 위해 일을 시작했고, 지금은 마음의 결정을 지었다. 앞으로는 주방에서 팬을 돌리기보단 책상에서 펜을 굴리는 일이 많을 것이다. 무엇이든지 우선 해보고 나니 미련도 후회도 남지 않는다. 취업과 시험 준비로 많이 힘들어하는 내 또래 청년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 젊음은 결코 늦지 않다고. 우선 해보고 돌아와도 늦지 않다. 나 또한 앞으로도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