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목표가 있는 사람은 절대 평범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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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가 있는 사람은 절대 평범할 수 없다
황경란 [미국 | Global Leader Engineer GLE 프로그램]
2013년 1월, 서른일곱의 나이로 나는 국비 지원을 받아 한국기술사회와 미국 버지니아텍에서 주관하는 엔지니어링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이 경험은 대학 졸업 후 12년가량 사회생활을 해 오던 내게 큰 전환점이 되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인정받으며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한창 엄마 손이 필요할 두 아이를 남편과 부모님께 맡기고 미국으로 가기를 결정했던 때 주변의 우려 섞인 목소리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그 기회를 놓쳤더라면 말 못할 후회를 자기 자신에게 쏟아 부으며 무난한 회사 생활을 하고 있었으리라.
내 욕심의 시작
나는 초등학생 두 남자 아이의 엄마, 한 남자의 아내, 네 명의 부모님의 딸과 며느리 그리고 대학교에서 건설IT를 연구하는 연구원이다. 모든 역할을 100%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슈퍼우먼은 아니지만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쟁이다. 대학 4년을 신나게 보내고 사회생활의 첫발을 딛던 2011년, 여자 기사가 흔하지 않던 건설 현장에서 근무를 시작하고 엔지니어로서 경력을 차근차근 쌓아 왔다. 시공이 무엇인지 눈을 뜰 때 즈음 문득 이렇게 안주하면 안 되겠다는 걱정을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건설기술인협회에서 건설 영어 강의를 듣기 시작하였다.
경력이 쌓여 가며 기술사에 대한 필요성을 느껴 미국기술사를 취득하게 되면서 한국기술사회와 인연을 쌓게 되는데, Global Leader Engineer라는 GLE 프로그램에 1기로 참여하면서 미국 진출을 위한 준비 작업이 시작되었다. 내로라하는 경력의 엔지니어 11명과 함께 해외 진출을 위한 이력서 작성, 영어 강의를 들었고, 미국에 진출해 있는 엔지니어들의 살아 있는 수기를 들으며 꿈을 키워 갔다. 그러던 중 한국기술사회의엔지니어 해외 진출을 위한 글로벌리더 엔지니어 지원 육성 사업에 지원하게 되고 이를 통해 미국으로 나가게 되었다. 여러 차례 심사와 인터뷰를 통해 선발된 10명의 엔지니어가 J1 VISA를 가지고 버지니아텍으로 가서 특별 엔지니어링 프로그램을 이수한 뒤 취업을 목표로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미국 생활의 시작
남자 5명과 여자 5명으로 구성된 우리 그룹은 갓 대학을 졸업한 졸업생부터 사회생활 15년 차 베테랑까지 다양한 연령층, 다양한 경력의 집합체였다. 그룹에서 유일한 기혼여성이었던 나는 거기서도 엄마와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계속해 왔던 영어 공부 덕이었는지 여행을 갈 때는 항상 관광 가이드의 역할을 했고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 중엔 종종 통역 역할을 했다.
학교에서의 수업은 Construction Management(CM), Building Information Modeling(BIM), English as a Second Language(ESL)로 구성되었다. 이 모든 수업이 국내 회사에서 내가 해 오던 업무와 관련이 있어 습득이 빨랐고 특히 BIM 교육의 경우 국내에서도 건설 전반에 도입하고자 하는 단계여서 더더욱 내 흥미를 끌었다.
개인적으로 이 프로그램 중 가장 좋았던 부분은 ESL 코스였는데 그 이유는 열정이 많다 못해 넘치는 영어 선생님 덕분이었다. 자녀를 다섯이나 둔 중년의 부인이었는데, 강의에 대한 열정, 학생들이 잘됐으면 하는 바람, 엄격한 수업이 어우러지면서 시너지효과가 컸다. 각종 현장 견학뿐만 아니라 국회의사당, 워싱턴 DC 주변 일대 랜드마크 건물들을 방문하는 횟수가 많았는데, 방문 뒤에는 늘 에세이를 쓰는 과제가 따라왔다. 모국어가 아닌지라 쉽지는 않았지만 선생님께서 우리 모두의 에세이를 읽으시고 검토 의견을 달아주시는 것을 보면서 단순히 숙제를 해내려고만 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질 때가 많았다.
미국 회사에서의 인턴 생활
버지니아텍에서의 3개월 교육과정이 끝난 후 우리는 각자 자신의 경력과 공부 이력에 맞춰 나머지 3개월 동안 미국 회사에서 인턴 과정을 보내게 되었다. 나는 BIM 경력을 인정받아 건물의 외장 공사를 시행하는 시공사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 회사는 패널, 창호, 유리 공사를 주로 수주하여 시공하는 회사였으며, 자체 공장도 보유하고 있어 창호와 패널의 경우는 직접 생산했다. 도면 작성 및 도면을 바탕으로 한 제품 생산을 좀 더 정밀화하고 자동화하기 위해 나를 포함해 두 명이 BIM 모델링 일에 배치되었다. 미국인으로만 구성된 회사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대화는 잘 통할지 온통 걱정뿐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우리에게, 우리는 그들에게 적응이 되었으며 그룹 속 같은 엔지니어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영어권 국가에서 온몸으로 영어를 체험하다 보니 어느덧 영어에 익숙해지고 업무 관련 협의를 할 때 사용하는 전문용어에 대해서도 적응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맡아 진행했던 업무는 그 당시 회사에서 수주했던 리모델링 공사 중 외부 창호와 커튼월 교체 공사를 위한 시공 Shop Drawaing을 3D
모델링을 통해 추출하는 작업이었다. 매니저는 동료들이 모두 Workaholic이라 말할 정도로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 눈에 결과물을 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내 모습이 잘 들었던지 인턴 기간이 끝날 무렵 함께 일할 것을 권유받았고 나 역시 흔쾌히 수락했다.
되돌아본 미국 생활과 현재의 나
가족들을 남겨 두고 훌쩍 미국으로 떠났을 때 마음의 무거움은 세상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지만 만약 다시 그때의 기로에 서더라도 내 선택은 같다. 내 과거를 돌아다보고, 내 꿈이 뭔지, 내가 가야 할 방향이 어디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결정할 수 있는 계기였고 그래서 지금 난 여기에 서 있다. 나는 지금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의 건설IT연구실에서 또 다른 내 꿈을 현실화하기 위해 연구원으로, 학생으로 공부를 하고 있다. 나는 새로운 도전을 즐기고, 문제에 맞닥뜨려 해결할 때의 즐거움을 놓치고 싶지 않다. 끝이 없는 욕심 때문에 아마도 나는 나태하지 않은 사회인으로 내 경력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욕심을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이해해 주는 남편과 가족들에게는 늘 미안하지만 내 나름의 방법으로 가족들에게 최선을 다하려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