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My stage is all of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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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작 / 해외취업
My stage is all of the world
송정환 [미국 | 크루즈승무원]
영어는 중학교 시절부터 담쌓고 살았다. 학점은행제로 시작해 간신히 4년제에 편입했고, 일을 병행하며 스물아홉에 졸업했다. 전공은 호텔경영학이었는데, 이 분야에서 일하려면 반드시 영어가 필요했다. 일해서 모은 돈으로 2009년 6개월 동안 필리핀 어학연수를 다녀왔지만 워낙에 기본이 없었기에 어느 정도 기초 수준까지 올라간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거기서 끝이었다. 남들처럼 필리핀을 거쳐 영국, 미국, 호주 등지로 유학을 갈 수 있을 만한 사정이 아니었다.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영어 조금 배우고 왔다고 쉽게 구할 수 있을 만한 일자리는 없었다. 나에게 2010년 한국은 답답하기만 했다.
꿈을 찾기까지
누구에게나 한 번뿐인 인생이라고 하지 않는가. 나는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일, 자연스레 내 마음이 끌리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내 꿈이 크루즈 승무원이었던 것은 아니다.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고, 전 세계의 사람들을 만나 보고 싶다는 나의 꿈에 부합하는 직업은 항공 승무원이라 생각했다. 승무원 면접 영어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학원에 등록하고, 수업이 다 끝난 뒤 다들 집으로 돌아간 시간까지 혼자 남아 그날 배운 것을 정리했다. 승무원을 꿈꾸는 친구들과 서로 면접관이 되어 주는 스터디도 반복했다. 하지만 면접의 벽은 높았다.
내가 크루즈 승무원에 대해 알게 된 것은 크루즈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지인 때문이었다. 승무원 면접에 힘들어하는 내게 그는 크루즈 승무원이라는 것도 있으니 알아보면 괜찮을 것 같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승무원 학원에 바로 등록하고 한 달 뒤 면접을 보았으나 또 떨어졌다. 그때쯤엔 내가 가지고 있던 자금도 점점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보험, 할부, 세금, 생활비가 나를 점점 죄여 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승무원이 되고 싶었다. 어떻게든 경력이 될 만한 일을 찾아 여러 곳에서 면접을 보았고, 그중 전 세계에 체인을 두고 있는 한 호텔에 입사하게 되었다. 뭔가 승무원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지는 못했으나, 기차 정도는 탄 기분이었다. 빠르지는 않지만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갈 기회는 얻은 것 같았다.
호텔은 내가 영어를 사용하고 익숙해지기에 좋은 곳이었다. 외국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호텔이라 그만큼 영어를 사용할 일이 많았다. 또한 일하면서 쌓이는 경험이라는 것도 무시하지 못하는 부분이었다. 내가 속해 있던 부서는 Concierge로, 체크인 체크아웃 이외 손님들이 요청하는 것, 가령, 길이나 여행, 차량 등 손님이 궁금해하는 부분을 알려주는 일들이 많았다. 쉬는 날에는 스터디 모임에 나가 영어 공부를 하였다.
이런 중에 미국의 한 크루즈 회사가 아시아 시장을 노리고 직원들을 채용한다는 소식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호텔에서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인터뷰에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했고 드디어 크루즈 승무원으로 입사할 수 있게 되었다.
트레이닝의 시작
2013년 7월 7일. 태어나서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고, 처음으로 크루즈를 타고 트레이닝을 받게 되었다. 2주간에 걸친 ‘PURSER’라는 포지션 트레이닝이었는데 나에게는 시작부터 커다란 벽이었다. 난생 처음 겪어본 시차 적응과 새로운 환경이 주는 긴장감, 무엇보다 100% 영어로만 진행되는 트레이닝. 트레이닝을 함께 받는 동기들은 영국, 미국, 불가리아, 일본 등지에서 왔지만, 영어권 사람들은 그렇다고 쳐도, 나머지들도 영어가 삶의 일부인 사람들이었다. 한국에서만 영어를 사용했던 나는 이건 달라도 뭔가 한참 다르다고 느꼈다.
트레이닝이라고 단순히 앉아서 교육만 받는 것은 아니었다. 교육은 기본적으로 3~4시간 정도이고, 나머지 시간에는 배 이곳저곳에 가서 이런저런 설명을 들었다. 크루즈라는 곳이 워낙 큰 공간이다 보니, 그 안에는 정말 여러 가지가 있었다. 하우스키핑부터 시작해서 항해를 담당하는 브릿지까지 날마다 여기저기 이동하면서 설명을 들었고, 이외 시간에는 프런트로 가서 어떻게 일하는지 보고 들었다. 프런트의 경우는 그나마 호텔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어서 어떤 식으로 업무가 이루어지는지 받아들이기 수월했다.
2주간 총 세 번의 테스트가 있었다. 물론 트레이닝을 통과하지 못하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첫 번째 테스트에서 통과하지 못한 사람은 나 하나였다. 상담 트레이너는 나를 불러 면담하며 내가 과연 이곳에서 일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을 많이 해 주었다.
그렇게 2주가 지나고, 교육생들은 저마다 크루즈를 배정받아 떠났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 남게 되었다. 트레이너는 나를 지금 당장 아시아로 보내는 것보다 이곳에서 영어에 더 익숙해지게 한 뒤에 보내는 것이 나을 거라고 판단했다. 나를 위해서도 그리고 회사를 위해서도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트레이너의 따뜻한 배려 속에서 일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크루즈 승무원의 생활
크루즈에서는 쉬는 날이 없다. 부두 정박 중에는 외출을 할 수 있고 시간이 맞으면 크루즈에서 제공하는 투어에 참여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매일매일 일해야 한다. 일하는 동안은 회사에서 대우를 받는다는 생각이 든다. 배 위에서의 생활은 호텔 생활과 같다. 하우스키핑에서 청소, 침대 시트 정리, 수건과 세탁물까지 서비스된다. 손님들이 이용하는 뷔페, 스페셜 레스토랑을 이용해도 된다. 크루즈는 분명 선내에 갇혀 있는 곳이지만, 답답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크루즈가 즐기기 위한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프런트 앞에서는 매일매일 뮤지션들의 라이브로 연주가 열리고, 때로는 퍼포먼스, 디스코 타임이 벌어진다.
크루즈 안에는 많은 직업군이 존재하며, 나는 프런트 리셉셔니스트로 일하고 있다. 처음에는 말이 제대로 잘 나오지 않아 전화벨이 울리면 긴장되고 부담이 컸는데, 지금은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다.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것도 아니고 발음이 좋은 것도 아니라 손님이 못 알아듣는 경우도 있고, 손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럴 때는 동료들이 도와준다. 그렇게 하나둘 익숙해져 가고 있다.
해외 취업이라는 것은 나에게 확실히 ‘남의 일’이었다. 누군가 해외에서 일한다고 하면 그저 부럽다고만 생각했고, 나에게는 가능성 없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지금 나의 현실은 크루즈와 함께 미국 알래스카에서부터 멕시코,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피지, 뉴칼레도니아, 바누아투, 아시아 이곳저곳을 떠다니는 것이다. 멋진 현실, 정말이지 ‘My stage is all of the world’가 되었다. 선내에서 일하면 많은 사람들을 마주친다. 그러면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건넨다. 누구나 알고 있는 그 인사말. “Hi, How are you?” 내 대답은 언제나 같다. “Living in d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