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 1, 2, 3 Viva Alge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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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작 / 해외인턴


1, 2, 3 Viva Algerie!


 


 


 


김나경 [알제리 | 해외 농업기술 개발센터 인턴]


 


 


전공을 바탕으로 뭔가 해보겠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이런 상태에서는 취업을 하더라도 한 조직의 구성원으로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러던 중 농촌진흥청의 해외농업기술개발센터에서 통역 요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다. 학교에 교환학생 프로그램도 없고, 그렇다고 어학연수를 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4년 동안 배운 불어를 원 없이 써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더없이 좋은 기회라 생각되었다. 그동안 책으로만, 논문으로만 접하던 아프리카를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기에 6개월이라는 파견 기간은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을 덜어 주기에 충분한 기간이 될 것 같았다.


 


 


 


우리 농업기술을 알리다


 


 


알제리는 중동의 머리, 아프리카의 심장, 프랑스의 눈이라 불릴 만큼 지리적, 역사적, 종교적으로 세 대륙에서 고루 영향을 나눠 받은 나라이다. 나는 농업을 전공하는 연구원 두 명과 한 팀이 되어 201431일 비행기에 올랐다. 내 일은 알제리 공항에 도착해 불어로 되어 있는 입국 카드를 쓰고, 말을 할 줄 모르는 동료들을 위해 입국 심사에 대답해 주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행정 업무를 포함하여 불어가 필요한 모든 업무에 투입되었다. 처음의 설렘도 잠시, 일주일간 사전 연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농업 분야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던 터라 당장 농가 현장에 가서 통역할 일이 걱정이었다. 농업 용어집을 찾아봤지만 우리말로도 이해를 하기가 어려웠고 급기야 국어사전까지 동원해서 내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따로 공부를 해야 했다.


KOPIA ALGERIA 센터에서는 2014년 상반기 두 차례에 걸쳐 채소 나눔의 날행사를 개최하였다. 알제리 국립농업연구소, 식량과학원, 농업전문대학에 있는 교수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관비 재배와 수경 재배 하우스에서 재배한 작물들을 소개하고 나눠 주면서 우리 기술을 홍보하는 행사인데, 두 번째 행사는 일부러 마그레브 지역 농업 학회가 열리는 날 진행하였다. 모로코, 튀니지, 이집트 등 북아프리카 국가의 농업전문가들이 학회를 위해 알제리 국립농업연구소에 와 있었기에, 그날 행사를 진행한다면 우리 기술이 더 널리 홍보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기대했던 대로 학회 참가자들은 우리 센터에서 직접 키운 무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행사를 진행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이 작물이 유전 변이가 아니냐는 것이었는데, 그때마다 하우스를 구경시켜주면서 북아프리카 지역의 기술과 비교를 하며 설명을 해 주었더니 나중에는 한국의 농업에 대한 찬사를 보냈다.


 


 


 


닫히기 직전에 두드리기


 


 


농업기술 지원을 위해 정기적으로 협력 사업에 지정된 농가를 방문하였다. 불어가 상용어로 쓰이니 당연히 모든 사람이 유창하게 말할 수 있을 거라는 내 생각과는 달리 현장에서 만난 농민들은 아랍어로만 대답했다. 농가에서 재배하고 있는 기술에 대한 조언을 하자 불쾌하다는 의사를 내비쳤고 대화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의사소통이 안되니 제대로 된 기술 지원이 불가능했고, 때문에 농작물의 품질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았다. 알제리는 120년이 넘도록 프랑스의 지배를 받아왔던 터라 외부에 개방을 하게 된 지 오래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외부인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소통을 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먼저 다가갈까 고민하다, 그들의 언어를 써서 친근함을 심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농가 방문 때 많이 쓰였던 표현들을 공책에 정리해 불어로 번역한 후 현지 연구원들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이후 방문하게 된 농가들에선 먼저 아랍어로 짧은 인사를 건네면서 마음을 열어 달라는 신호를 계속 보냈고, 농가의 문제점에 대해 어떻게 풀어 나가면 좋을지 직접적으로 조언을 구하기도 하였다.


알제리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두 번째로 면적이 큰 국가라 지역마다 기온이 다르고 남쪽으로 내려 갈수록 사막에 인접한 지역이 많아 여름철에는 아예 농사를 짓지 못하기도 한다. KOPIA 센터에서 수경 재배 기술을 이용해 작물을 키우는 것을 인상 깊게 본 아드라르 지역에서 기술이전을 위한 자문을 요청해 왔다. 아드라르 공항에 내리자마자 덮쳐 오는 열기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과연 사막에서 농업이 이루어질까? 5월부터 9월까지 약 4개월 동안은 기온이 50도에 육박하기에 작물이 다 말라 버린다고 했다. 그 때문에 24시간 수분을 유지시킬 수경 재배 시설이 필요했다. 23일 동안 연구소를 견학하고 세 차례가 넘는 회의를 거친 결과 기술이전에는 문제가 없을 거라는 결론이 나왔다.


알제리에 체류하는 지난 6개월 동안 나는 정말 축복받은 사람이라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다. 조금만 걸어 나가면 따사로운 햇살 속에 지중해가 펼쳐져 있고, 눈 뜨는 순간부터 내가 대학에서 배운 불어를 쓸 수 있었다. 간혹 같이 파견된 동기들 중에는 본인이 파견된 나라의 체계에 불만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KOPIA라는 프로그램 자체가 농업이 발달되지 못한 개발도상국으로 파견되는 것이라 막연한 외국 생활의 동경만 가지고는 6개월을 보내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 낭비가 되느냐, 배움의 시간이 되느냐는 본인이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달려 있다.


알제리에 가기 전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왜 유럽이 아니고 아프리카에 가느냐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땅이지만 가장 젊은 땅이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말해 왔다. 알제리는 120년이 넘는 동안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고 최근에야 외부에 개방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지난 월드컵 때 같은 조에 편성되면서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만 이미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진출해 발전소를 건설하고 있었다.


만약 알제리에 가서 직접 보고 느끼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아직도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지 못한 채 목표 의식 없이 흘러가고 있었을 것이다. 세 번의 계절 변화를 겪고 난 지금 나는 국제 협력 관계를 심층적으로 공부해 보고 싶어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막연하게 현장에 나가 왜 그런지 의문을 갖는 것도 좋지만, 이론을 좀 더 탄탄하게 다지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알제리에서의 6개월은 내가 지식을 쌓고 다시 세상에 나가는 데 앞으로도 큰 밑거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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