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두렵지만 설레는 새로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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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작 / 해외취업


두렵지만 설레는 새로운 시작


 


 


 


김원 [프랑스 | Daniel et Denise 셰프]


 


 


 


내가 사는 리옹은 세계 미식가의 수도라 불린다. 리옹 전통 음식의 기본은 가정식 요리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셰프이자 세기의 셰프로도 선정된 Paul Bocuse의 요리에는 리옹 음식을 좀 더 클래식하게 선보인 것들이 많다.


나는 컴퓨터가 좋아서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지만 군대를 제대하고 나자 컴퓨터라는 게 단지 대학을 가기 위한 수단은 아니었는지 혼란스러웠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고, 일정 중에 방문한 리옹에서 지금은 아내가 된 친구의 도움으로 L’institut Paul BOCUSE라는 요리 학교에 방문해 얼떨결에 입학 상담까지 받아 보게 되었다.


 


 


 


새로운 출발


 


 


스물여섯 살 나이에 컴퓨터를 전공하다 말고 하루아침에 요리를 배우러 프랑스에 간다고 하니 부모님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오랜 설득 끝에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하루 16시간씩 일하며 유학을 준비했다. 프랑스로 다시 돌아온 건 20096월이다. 알파벳부터 프랑스어 공부를 시작했지만 창피하지 않았고, 일주일 동안 먹은 거라고는 라면 세 개밖에 없었어도 겨우 그런 걸로 나를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다. 9개월 뒤 161의 경쟁률을 이겨내고 L’institut Paul BOCUSE 요리 학교에 합격했다. 같이 수업을 듣는 친구들은 거의 대부분 나보다 일곱 살이 어렸지만 이해를 못 하거나 못 알아듣는 내용들은 물어보고 또 물어봤다. 나는 항상 나는 외국인이니깐 모르면 물어보는 게 당연한 거잖아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실수하지 않기 위해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나의 실수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외국인이라는 시선은 일주일만 지나면 없어지고 난 그냥 주방의 한 팀으로서 모든 것을 다른 동료들과 등등하게 하는 입장이었다. 같은 질문이 반복되니 오히려 쉐프는 내가 완벽하기 위해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완벽히 할 줄 몰라 확인한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후배로 다른 외국인이 들어왔을 때, 나는 내 모습이 어떠했는지 되돌아볼 수 있었다. 그렇다, 처음부터 나 스스로 나는 외국인이니까라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없어지고 나니 내가 좀더 노력해야 할 부분과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생겼다.


그러나 일하지 않으면 생활비가 없었으므로 3년의 학교생활 동안 쉬는 날 없이 주말마다 한국 식당에서 일했다. 시간이 날 때는 주 중 저녁에도 일을 했다. 밀린 과제도 해야 하고 학교 조별 과제도 많았기에 시간을 100% 잘 활용해야 했다.


 


 


 


두 번의 인턴 생활


 


 


1학년을 마치고 리옹 전통 레스토랑(Daniel et Denise)으로 인턴 실습을 나갔다. 말이 좋아서 레스토랑이지 지방의 전통 음식점 같은 곳이었다. 서운하고 실망스런 마음도 적지 않았다. 내가 맡은 임무는 감자튀김과 마카로니 그라탕, 생선이었다. 250도가 넘는 오븐 앞에서 정확한 시간 동안 마카로니 그라탕을 익히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모든 음식은 셰프의 말에 집중하며 타이밍을 맞춰야 했다. 조금의 실수만 있어도 셰프의 불호령이 떨어졌고, 내 손과 팔에는 상처들이 늘어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레스토랑의 쉐프는 MOF라 해서, 2년에 한 번씩 많게는 수십 명에서 적게는 약 한두 명씩만 선발되는 장인 요리사였다. 어쩐지 정말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실습을 마치자 내 실력은 분명 향상되어 있었다. 3년 과정을 모두 마치고 두 번째로 나간 실습은 미슐랭 별 2개짜리 레스토랑인 La mere Brasier였다. 60명의 손님을 위해 17명의 요리사가 일하는 이곳은 접시 하나에 음식을 담는 데도 5~6명의 요리사가 섬세하게 땀 흘리며 일했다. 이곳에서 실수라는 것은 어떠한 부분에서도 용납되지 않았다. 야채의 모양, 크기, 소스의 농도, 고기의 익힘 정도, 접시에 놓여지는 구성까지 완벽해야 했다. ‘Ne pas prendre de risque’ 위험을 가지지 말라.정확하게 일하고 위험 요소를 배제해야만 항상 같은 맛을 낼 수 있고 같은 리듬으로 일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같은 양의 재료와 같은 시간으로 같은 맛을 내는 것은 엄청난 경험과 노력에서만 나올 수 있었다. 내 요리에 엄격하고 꾸준한 맛을 내며 반복되는 일을 한결같이 해내야 한다는 말을 되새겼다. La rigueur est un secret de succes. 꾸준함이 성공의 비법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다


 


 


두 번째 인턴이 끝날 무렵 나는 취업을 준비해야 했다. 취업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가지고 있던 학생 비자를 취업 비자로 바꿔야 했다. 인턴을 하고 있던 레스토랑에서 나를 고용하려고 했지만 많이 망설여졌다. 실업률이 높은 프랑스에서 외국인이 취업 비자를 받는 것은 아주 까다롭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 번 비자 신청이 거절되면 다른 방법 없이 한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 무렵 처음 인턴을 했던 레스토랑 Daniel et Denise의 셰프에게도 같이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다행히 계약조건들이 나의 비자를 바꾸기에 완벽했다. 게다가 이미 인턴 경험이 있었기에 직원들의 절반 정도는 아는 사이였고 주방에서의 리듬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실습생이 아닌 파트 셰프였다. 내가 책임져야 할 일들이 많아졌다. 일한 지 얼마 안 돼 부셰프가 이직을 했고 헤드 셰프마저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퇴직을 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헤드 셰프의 일을 소화해 나가야 했다. 기회일지도 몰랐지만 한순간도 긴장 없이 지나갈 수 없었다.


주방엔 위험한 요소들이 많다. 누군가 소리치며 긴장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사고가 벌어진다. 셰프의 기본 역할 중 하나는 팀을 꾸려 나가는 것이다. 전반적인 리듬을 체크하며 항상 같은 맛을 유지하고, 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명령하는 일이 마음 내키는 건 아니지만 나는 단단해져야 했고, 화를 내지 않으면서도 화난 사람보다 더 무섭게 소리치며 전반적인 흐름을 잡아야 했다. 물론 일이 끝나면 모든 요리사들과 친구로 돌아온다. 매주 금요일 저녁 대청소를 마치고 나면 새벽 한시가 넘는다. 그때 다 같이 맥주를 마시며 한 주를 마무리한다. 이 소중한 한 잔을 다 비우고 나면 다시 새로운 한 주가 찾아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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