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의 유학과 취업 그리고 삶

멘토
[미국] 임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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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유학과 취업 그리고 삶

내가 나에 대해 글을 쓴다는 건 참 힘든 일이다. 많은 기회가 있었으나 작필 능력 부족과 끈기 부족이라는 산 앞에 여러 번 무너졌다. 해외청년취업이라는 좋은 취지의 기회가 생겨 지원을 했고 운이 좋게 멘토라는 타이틀을 달았으니, 이번 기회의 나에 대해 조금 적어 보려고 한다. 사실 나는 책을 읽을 때에도(사실 나는 책을 읽는 걸 매우 싫어한다), 감성적인 시나 소설을 싫어하며, 남의 인생을 공통 잣대로 보려 하는 인생 지침서 혹은 자기 계발서를 제일 싫어한다. 사람의 상황이나 개성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잘난 맛에 쓰는 글들이 나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었기도 했지만 질투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속 좁은 내 성격 탓이기도 했다. 그런 책 읽기 싫어하는 내가 프롤로그를 작성하고 내 경험에 대한 삶을 공유하려고 하는 게 조금 아이러니하겠지만 이해해 주길 바란다. 서두에 이런 부정적인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평소에 부정적인 사람이어서는 절대 아니다. 내가 느꼈던 경험이 절대적으로 내 주관에 의해 작성되었으며 해외취업을 실패하더라도 절대 네 탓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서이다. 네가 원하는 것을 남들처럼 달성하지 못한 이유는, 단지 상황이 달라서 혹은 주어진 기회가 달라서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나는 유학이라는 좋은(?) 사실 빚 좋은 개살구... 기회가 주어졌고 오바마 임기 말에 영주권 심사가 느슨해진 때에 신분 문제가 해결되었으며, 내 능력보다 항상 좋은 직장에 좋은 기회가 주어졌다. 나보다 더 대단한 사람도 많고 더 멋진 사람도 많으나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고 있으며 이렇게 내 이야기를 공유해 줄 수 있는 사실이 너무나도 기쁘다.

절대 절대 좌절하지 말라 너는 너 자체로 멋진 사람이니

 

내가 너무 낯선 그 이름 ..."취준생"

취준생 이야기를 조금 해보려고 한다. 나는 졸업 당시 남들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았다. 취업에 관심이 없어 창업도 하고 친구들과 동호회를 만들어서 프로젝트 성으로 아이디어를 구현해 보는 일이 정말 좋아서 이기도 했다. 내가 미국에 첫발을 내디딘 건 2007년이었고, 당시 미국은 티비에서만 듣던 "아메리칸드림"을 떠오르게 하는 희망의 나라였다. 영어를 너무 못했지만 한국 Y 대학교에서 수학전공으로 1년을 듣고 온 터라 수학만 잘했던 기억이 있음, 미국 대학교 수학 전공 수업은 너무 쉬웠다. 다만 교양 과목 성적이 안 좋아서 졸업 당시 내 평점은 3.3/4.0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친구들과 호기심에 창업한 회사도 잘 흘러가는 듯했다. 그런데 군대 문제와 신분의 문제가 생기면서 내가 창업한 회사를 매각해야 했고, 나는 하루아침에 취준생이 되었다.

군 전역 후 2014 1월 어느새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둔 취준생이자 복학생 신분으로 다시 미국을 찾게 되었다. 유학생으로서는 더 이상 특별할 게 없는 미국이었지만, 취준생으로서 미국 생활은 정말 힘들고 낯선 경험이었다. 1월에 복학하자마자 수많은 Job Fair가 열렸다. Job Fair에 참여하기 위한 흔한 양복 한 벌 없던 나는 학교 근처 싸구려 양복집 갔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고학년을 고려하며 사 입었던 교복 핏과 같은 미생 양복을 입고 거울 앞에 섰던 때가 생각이 난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레쥬메 양식을 다운로드했다. 특별할 것 없는 내 27년 인생을 약탕기처럼 쥐어 짜내어 써 내려갔다. 지금이야 나의 레쥬메가 3, 4장이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A4용지가 그렇게 광활한지 알지 못했다. 사실 사회 초년생의 경험이라고 해봤자 인턴 한두 번에 동아리 활동, 학점 그리고 이수과목 정도가 되겠지만 그때는 내가 뭐하고 살았는지 자책을 했던 기억이 있다. 이 글을 보는 취준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회사는 네게 바라는 게 크게 없으니 너무 고민하지 말고 솔직하게 잘 적길 바란다.

미국 입사 시스템이라곤 누구 하나 조언해 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혼자 벽에 부딪쳐가며 배우고 넘어지기를 반복하였다. 해외취업에 영주권 없이 성공하는 사람도 없었고 설령 있다 하더라도 미국에 있는 한국 회사의 제대로 된 대우를 못 받는 일이 대부분이었던 시절이다. 누가 설명을 해준다 하더라도 내일이 아니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그래도 이 글을 보는 취준생이 있다면 나보다 나은 사람들이라 믿으며 꼭 주변 선배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길 바란다.

 

미국의 입사 시스템

미국 신입사원 입사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학부 4학년 마지막 학기가 아니다. 지금은 이렇게 담담하게 말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당시에는 큰 멘탈 붕괴였다. 보통 미국 학생들은 3학년 여름방학에 가고 싶은 회사에서 인턴십을 한다. 이 인턴십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수습 기간을 거처 정직원이 되는 필수 과정 중 하나이다. 외국 친구 모두 그 시기에 가고 싶은 곳에서 인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 친구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한국 친구들은 군 입대를 하거나 한국에서 보내는 꿀맛 같은 휴가를 가질 수 있는 최적의 타이밍이라고 생각했었던 거 같다. 물론 안 그런 사람도 있었겠지만 내가 아는 사람 절반 이상은 그랬다.

내가 가장 가고 싶었던 Blizzard Job Fair Session에 갔을 때, 놀랍게도 Recruiter들이 몇몇 학생과 친분이 있는 상태였다. 너무 신기해서 "How would you know each other?"라고 바보처럼 물어보곤 했던 기억이 있다. 나에게는 테이블 위에 레쥬메를 놓고 가라고 말하고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물론 나도 할 말이 없었다. 이 당시에는 취업에 대한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어서 "Any Questions?"이라는 질문에 "No Thanks" 말고는 다른 초이스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렇게 나의 멍청한 구직활동은 Blizzard뿐만 아니라 내가 아는 모든 기업 Job Fair에서도 똑같은 Processing으로 진행되었다.

 

인생의 첫 실패 그리고 좌절

그렇게 미국에 도착한 2014 1월 첫 구직활동은 좌절만 안겨주고 끝났다. 사실 글이라서 쉽게 끝났다고 끝맺음 할 수 있었지만 실상은 전쟁이었다. 수업을 갔다가 1시간 공강 시간에 레쥬메를 고치러 걸어서 20분이나 걸리는 Writing Center에 갔으며, 20분 동안 첨삭을 받고 다시 20분을 돌아오는 일을 하루에도 2~3번씩 반복해야만 했다. 그 당시 나를 아는 멘토가 한 달 사이 너처럼 많이 온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 그만 오라는 소리처럼 학을 뗀 적도 있었다. 수업 후 저녁에는 옷을 갈아입고 일주일에 2~3번이나 열리는 Job Fair에 참가하여 듣기 평가를 진행하였다. 심지어 내 분야가 아닌 곳도 기웃거리면서 여러 Domain의 영어 듣기 평가를 진행하였다.

그 당시를 생각하면, 1월이었지만 캘리포니아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빚을 Sun block 없이 다 받아낸 내 새까만 얼굴에 Recruiter를 보면서 하도 미소를 지어서 부들부들 경련이 올 정도로 웃고 있는 까만 피에로 같은 모습만 생각이 난다. 사실 몇몇 이름 없는 회사에서 저임금으로 부리기 위해 나의 가치를 알아보고 관심을 보였다가도 내 영어 실력에 소스라치게 놀라곤 서로 멋쩍은 미소를 지으면서 작별 인사를 나누곤 했다. 7년의 미국 생활에서 굴러먹던 나의 영어 실력으로는 전략 컨설팅 Job을 갖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나의 구직 활동은 미궁 속으로 만 흘러 들어갔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온다 그러나 준비된 자만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다.

하루에 여러 번씩 진행되던 인터뷰를 보다 보니 어떤 패턴이 보였다. 물어보는 건 비슷했으며, 긴장을 안 하니 그들 앞에서 평소의 친한 친구들과 대화할 때 나오던 갱스터스러운 영어도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취업은 일종의 그 회사와 나의 Chemistry라고 생각한다. 나와 잘 맞는 친구가 있듯이 회사가 갑이 아닌 하나의 같이 가는 인생의 동반자라고 생각하고 접근하니, HR 사람들이 그제서야 도깨비에서 한없이 착한 옆집 백인 할아버지같이 느껴졌다. 내가 취업전선에 실패했던 이유는 영어 인터뷰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었으며, 미국 취업 시스템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이 글을 읽는 해외취준생들에게는 위와 같은 취업 과정이 해당 안 되는 내용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만국 공통에 적용되는 이론은 바로 이것이다.

 

준비된 자만이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다

그때 가서 하지 하면 늦는다. 해외 취업도 국내 취업도 그렇다. 기회는 어디서 어떻게 올지 아무도 모른다. 내가 쉽게 포기하고 영어레쥬메에 공을 들이지 않았더라면... 혹은 내가 영어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나는 한국에 돌아와야 했고 한국에서도 쉽게 취업하기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총 150군데 이상 회사에 지원을 했고 100군데 이상의 회사에서 서류 탈락의 고베를 마셨다. 그리고 30군데가 넘는 회사에서 첫 HR 인터뷰에서 탈락했으며, 오직 5군데만이 나를 On-Site로 불러줬다. 사실 어차피 내가 붙어서 갈 회사는 1개의 회사이다. 네가 능력이 출중해서 100군데 붙었다 하더라고 한 곳만 붙은 나와의 차이는 네 회사 내 회사 딱 그 차이이다. 그러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내가 부족한 만큼 남들보다 하루 먼저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해외취업에선 더더욱 영어와 그 해당 국가의 취업 시스템에 대해 미리미리 공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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