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5. 미국 최적의 진로를 찾다
- 멘토
- [미국] 정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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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피난으로 변한 휴가
2. 한국으로 돌아가다
3. 취업시장 재입성
4. '최적의 진로'를 찾다
5.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
6. 한국에서 일하는 현재
7. 마무리하며
1. 피난으로 변한 휴가
코로나 시기 가장 운 좋은 사람
2018년 영주권 발급받고도
2년이 지난 작년 2020년, 회사와 협의하여 3개월간의 한국행 장기 휴가를 계획했다. 그런데 휴가 날이 다가오면서
미국의 코로나 케이스가 급격하게 증가했고, 내가 한국으로 떠남과 동시에 연방 정부와 회사들은 셧다운
했다.
다행히도 나는 팬데믹 초기 3개월을 한국에서 보낼 수 있었다. 미국 친구들과 동료들에게 듣기로는
셧다운 직후 미국은 혼돈 그 자체였다고 한다. 거대한 땅덩이에서 촘촘한 질병 관리는 사실상 불가능했고, 문 닫은 회사들로 인해 직장인들은 고용 불안에 시달렸다. 게다가
사상 초유의 국가적 재난상황으로 인해 여기저기에서 시위와 차별 등 마찰이 생겼다. 그 시기 한국은 이미
초기 코로나 혼란을 한차례 겪은 후 마스크가 일상화된 세계 유일의 안전한 국가였다. 오랜만에 놀러 온
한국은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는 안락한 피난처가 되어주었다.
2. 한국으로 돌아가다
커리어 고민은 코로나 잠식 후로 미룬다
쏜살같은 3개월의
휴가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리프레시를 위해 떠났던 휴가였지만,
돌아오는 마음은 몹시 무거웠다. 위기의 상황에서 양국의 극단적인 온도차를 경험하고 나니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미국에서의 커리어를 계속해서 이어나가야 할지,
한국에서 걱정하는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지 고민이 되었다. 내적 갈등을 겪는 중에도 무섭게
올라가는 미국 코로나 확진자 그래프를 보니, 일단 한국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다시 오더라도 당분간은 가족들 곁에서 걱정을 덜어 드리고, 직업
고민은 코로나 잠식 후로 미루기로 결정했다.
곧바로 재입국 허가서(Reentry
Permit)를 신청했다. 접수가 된 것을 확인하고, 승인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미국 살림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향했다.
재입국허가서 (Reentry Permit)
일반적인 영주권자는 미국 외의 국가에서 1년 이상 체류 시 영주권이 취소된다. (6개월 체류해도 취소되기도
함.)
이런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는 허가서가 '재입국허가서'이며, 반드시
미국 영토 밖으로 나가기 전에 신청해야 한다.
재입국 허가서가 있으면 미국 외의 국가에서 2년간 체류할 수 있고, 추가 연장도 가능하다.
3. 취업시장 재입성
5년 만에 돌아온 취준생
2020년 12월,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왔다. 여름휴가 때 이미 3개월의 휴가를 겪은 터라, 한국으로 역이민을 온 상황은 쉽게 익숙해졌다. 다만, 여름에 자가격리를 하고도 또다시 격리를 하고 있자니 너무나도
좀이 쑤셨다 (나는 정말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성격이다.) 이
기나긴 격리 기간이 끝나도 할 일이 없는 백수라는 생각이 들자, 하루빨리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바로 재취업을 마음먹었다. 오랜만에 한국 취업 시장으로 돌아오니 감회가 새로웠다. 취준생 때를
떠올리며 추억에 젖는 것도 잠시, 5년 만에 다시 취업을 하려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워낙 유행이 빠른 한국 패션업계에서 수년간의 공백은 치명적인 약점이 될 것 같았다. 게다가 미국에만 있는 홀세일 PB 브랜드의 관리 역할을 한국에선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고민이 더 많아지기 전에 일단 5년
전을 마지막으로 업데이트가 없던 이력서를 수정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4. '최적의 진로'를 찾다
'최적의 진로'는 축적된 경험 속에 있었다
미국에서 경험했던 이력들을 한 줄씩 써 내려가자, 직장에서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내가 어떤
업무를 잘 할 수 있고, 어떤 책임을 가졌을 때 인정받았었는지 모든 데이터가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었다. 동시에 앞으로 하고 싶은 직무의 방향도 조금씩 선명해지는 느낌이었다. 이력서가
완성될수록 원하는 직무가 점점 더 구체화되었다.
매출에 따라 달라지는 부서의 분위기를 느껴봤던 '영업부'는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새로운 사업 방향을 설계하고 개척하는 '기획부'에는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거기에다 수평적 구조의 자유로운 업무
환경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았다. 한국을 떠났던 이유임과 동시에, 미국에서 찾고자 애썼던 ‘최적의 진로’는 내 머릿속에서부터 점점 그려지고 있었다.
5.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
나의 이력서를 이루는 경력들은 허투루 쌓이지 않았다
갓 완성된 이력서를 들고 취업문을 두드렸다. 화려한 인재가 넘쳐나는 취업 시장에서 남들보다 뚜렷하게 내세울 것은 없었지만,
왜인지 기죽지 않았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포지션을 정확히 알고 있고, 원하는 직무가 뚜렷하니 불안할 것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그동안의
사회생활 경험 때문인지 웬만한 회사들의 생태계를 알 것 같았다. 모집 공고만 봐도 어떤 분위기의 회사에서
어떤 사람을 필요로 하는지 대강 느낌이 왔다. 심지어 면접관들이 원하는 인재로 보이게끔 내가 가진 능력
중 필요한 부분만 다듬어 보여줄 수도 있었다. 이것은 절대로 내가 잘나서가 아니었다. 순전히 사회생활의 ‘짬’이
생기면 가능한 부분이 있다. 나의 이력서를 이루고 있는 경력들은 허투루 쌓인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경험들은 자산이 되어 나를 빛내주고 있었다.
6. 한국에서 일하는 현재
커리어를 구원해 주는 '백마 탄 회사'는 없다
한국은 너무 좁고 따분하다며 해외로 떠났던 나는 현재
한국에서 다시 일하고 있다. 미국에서 '최적의 진로'를 찾고자 의지를 불태웠지만 결국 한국에 돌아온 후에야 진정한 방향을 찾았다.
물론 아직도 더 나은 적성을 갈망하고 있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다른 곳에 눈을 돌리기보단
경험과 내실을 더 쌓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5년 전의 나는 자신의 미숙함은 모르고 외부 환경만을
탓했다. 해외로 취업하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했고, 미지의
나라에서 백마 탄 회사가 나의 커리어를 구원해 주길 꿈꿨다. 하지만 사회생활은 미국에서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호칭과 복장의 자유를 얻는 대신 더 큰 책임이 뒤따랐고, 소위 '꼰대'가 없는 대신 언어적 불편이 나를 함구하게 만들었다. 열심히 일해야만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구조는 어딜 가든 똑같았다.
7. 마무리하며
당신의 해외 취업을 응원합니다!
이쯤 되면 해외 취업보다는 한국에서 버티기를 독려하는
것으로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해외 취업을 원하는 멘티들께 어디로든 마음껏 지원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도 당시에는 몰랐듯이, 직접 부딪히기 전까진 '사회생활은 본인의 능력에 따르는 것'이라는 말을 100%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 스스로를
놓아 보는 것에서 개인적으로 큰 성장을 했다고 생각한다. 결국 해외 취업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직업에
만족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느 곳에 있든 사회생활은 비슷하다면, 이국적인 문화와 드넓은 자연을 보너스로 받을 수 있는 해외 생활을 추천한다.
다만, 언제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여 인생에서 가장 다채로울 해외 생활을 마음껏 즐기기를
바란다.
해외 취업을 위해 나의 멘토링 콘텐츠까지 찾아와 글을 끝까지 읽었다면, 이미 해외 취업관련 다른 정보들도 섭렵했을 것이다. 당신은 이미 준비성이 뛰어난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불안함을 가지고 있다면 좀 더 자신을 믿고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성공적인 해외 취업과 행복한 앞날을 응원합니다 :)